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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Word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본문

[하루 일지] 매일매일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Day Word 2026. 6. 28. 21:49

파리의 목숨, 사람의 목숨

파리채로 힘껏 내려치면 내장이 터져 죽는 것이 파리입니다. 사람이 팔 한 번 움직이는 가벼운 노력에 비해, 파리는 가장 소중한 목숨을 잃습니다. 하지만 파리는 이물질을 옮겨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므로, 우리는 파리를 죽이는 것을 '합리적인 선택'이라 여깁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목숨도 이와 같을까? 귀찮다고, 혹은 더럽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배제하고 죽이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는가?"

거대한 권력 앞의 침묵, 그리고 비극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잔인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그 추종자들은 손가락 하나로 인간의 생사를 결정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은, 간수의 손가락이 왼쪽을 향하면 가스실로, 오른쪽을 향하면 강제 작업장으로 보내졌습니다. 단지 간수의 손가락 까딱임 하나에 삶과 죽음이 갈린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또한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외치던 수많은 이들을 고문하고 학살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내부에서조차 제국주의의 야만성을 비판하는 자들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이러한 비극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1970~1980년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청년들과 정의를 부르짖던 어른들 역시 독재자의 명령에 눈이 먼 군인, 경찰, 국가공무원들에 의해 고통 속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왜 "아니다"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나치의 추종자들, 군국주의를 이끌었던 관료들, 그리고 독재자의 명령을 수행했던 공무원들은 정말 죄가 없을까?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핑계로, 떠나간 이들과 남겨진 가족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들 역시 분명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자식이었고, 다정한 아버지이자 어머니였습니다. 밖에서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사람을 죽이면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어떻게 성실한 부모로 살 수 있었을까? 그들은 그 일에 기괴한 사명감을 가졌던 걸까, 아니면 하기 싫어도 억지로 했던 걸까?
 
왜 그 수많은 이들 중 누구 하나 "이건 아닙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만약 두려워서 말하지 못했다면, 지금 자신들의 손에 죽어가는 그 사람 역시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왜 알지 못했을까?

현대 사회의 우상, '돈'을 향해 던지는 망치

김수환 추기경의 저서 《바보가 바보들에게》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누군가 먼저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이 전파되고 점차 확대되어 모든 사람의 꿈이 될 때에는 분명히 현실화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 말씀을 깊이 곱씹어봐야 합니다. 물론 지금은 과거처럼 자유와 평등을 위해 당장 목숨을 걸고 총칼 앞에 서야 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그러나 여전히 강력한 권력과 불의는 형태를 바꾸어 존재합니다. 다만 우리는 그 거대한 존재에 압도되어 "아니다"라고 말하지 못할 뿐입니다.
 
철학자 니체는 현재의 절대적 가치를 '우상'이라 부르며, 이를 망치로 깨부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시대의 우상이 종교적 금욕주의였다면, 지금 이 시대의 절대적 우상은 단연 '돈'입니다.
 
좋은 대학에 가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높은 직책에 오르려는 이유의 끝에는 결국 돈이 있습니다. 남과 비교해 더 풍요롭게 살고, 그 풍요를 바탕으로 타인의 부러운 시선을 즐기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지독한 물질주의적 가치 앞에서도 감히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침묵의 끝에 남는 것

귀찮다고, 무섭다고, 혹은 나에게 손해가 올까 봐 불의와 부조리 앞에 침묵하는 사람은 결국 마지막에 홀로 남게 될 것입니다. 다음의 말처럼......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에 카톨릭 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 이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내 차례였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를 위해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 마르틴 니묄러
 
비겁한 침묵의 대가는 결국 나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한 줌의 용기. 그것이 나와 우리를 지키는 유일한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